주변에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의대교수가 정년퇴직을 하고도 연구실 방을 빼지 않는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방을 빼 달라고 부탁을 하다 하다 결국 내용증명까지 보내게 되었다.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은퇴야말로 삶이 끝난 듯한 절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업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삶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친한 지인 중에 이런 분이 있다. 공대 교수로 일하다가 퇴임 후 장성한 두 자녀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생활에 기본적인 적응이 되자 미국의 대형 공구 스토어 로우스(Lowe’s)에서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도 하고 손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은퇴 후 미국 생활에 대한 유튜브도 시작했다.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나이에 맞춰 살라는 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나이에 맞춰 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아닌 것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것은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다. 나이가 들었다고 뇌가 굳어지는 것도 아니다. 뇌는 새로운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 굳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나이가 들어 뒤처지고 머리가 굳어진다고 생각하면 더 우울해진다. 뇌 과학자들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고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하는 것이 건강한 뇌와 마음을 만드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뇌 과학자들이 권하는 3가지 활동
[1] 춤을 배워 본다
뇌 과학자들은 의외로 춤 예찬론자가 많다. 춤은 뇌를 젊게 해주는 운동이다. 뇌 과학에서 말하는 춤은 혼자 추는 막춤이라기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추는 스텝이 있는 춤이다. 많은 운동 중에서 춤이 유난히 뇌에 좋은 이유는 춤이 복합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댄스 스텝을 익히기 위한 학습은 뇌의 새로운 연결망을 형성한다. 춤은 감각 능력과 균형을 향상시키고 공간 인지 능력과 기억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음악을 듣고 공간을 움직이는 활동인 만큼 시각, 청각, 움직임의 연결 과정도 필요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사교댄스는 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이 이루어지고 인지적인 훈련도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춤은 사회적인 활동이다. 춤을 추는 문화가 있는 커뮤니티는 치매 발병률이 적고 노인들의 우울증도 적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쓴 책에서 한국의 콜라텍을 칭송하는 글이 나오기도 했다. 집 근처 공원에 새벽 산책을 나가면 춤을 가르치는 강사와 열심히 따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에서도 노인들이 공원에서 단체로 태극권을 익히는 모습이 흔하지 않은가. 춤을 추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하루에 30분 정도 유산소 운동을 하자. 운동이라기보다 생활체육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모든 게 배달이 되는 시절이지만 마트에 걸어가서 우유 한 병을 사들고 오는 것도 좋다. 단, 어느 정도는 숨이 찰 만큼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필요하다. 뇌의 인지기능에 도움이 되려면 유산소 운동만큼의 효과는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서도 운동이 뇌를 발달시키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가 맞는 순서일지 모른다.
[2] 외모를 가꾼다
한 사람의 건강상태와 기억능력, 수명을 측정할 때 보다 정확한 판단 근거는 객관적 나이가 아닌, 그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인 나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보다 “당신은 몇 살로 느끼십니까?”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엘렌 랭어(Ellen Langer)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적으로 일찍 탈모가 오거나, 연령차가 나는 배우자와 사는 경우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더 늙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관적 나이가 높아지면 건강과 기대수명에 있어서도 부정적 영향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젊어 보이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라 주관적 나이를 낮추고 건강상의 이로움을 줄 수도 있다.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 것, 의식적으로 자세를 꼿꼿하게 펴는 것, 향수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젊고 세련되게 하는 것 등이 더 젊은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성장 마인드셋이 우리 인생의 항로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정 마인드셋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고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고정 마인드셋은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성장을 막는다. 사람들은 흔히 노년에 이 고정 마인드셋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가능성은 나이가 든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신체적인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을 또 다른 도전으로 여기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3] 인간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한다
행복에 관해 가장 장기간 이루어진 연구는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다. 1938년에 시작된 이 연구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한 사람의 수명과 행복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 지능지수, 경제적 소득과는 그렇게 높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연결은 한 사람의 행복에 있어 과거 연구된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외로움은 빈곤·영양·흡연·운동보다도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뇌의 노화를 촉진시킨다.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는 것은 아주 가깝고 끈끈한 관계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느슨한 관계여도 좋다. 느슨한 관계라는 의미는 친하지 않다는 의미보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로운 관계라는 의미다. 느슨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연습으로 매일 한 가지 숙제를 해보자. 매일 적어도 한 명씩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다. 커피숍 사장님에게 말을 붙일 수도 있고 길 가다가 버스 노선을 물어볼 수도 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할머니에게 손주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 반려견을 데리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반려견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 동아리 활동, 함께 배우는 모임, 봉사활동도 좋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내 이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런 쉽게 시작된 관계, 가볍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내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회적인 연결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뇌를 만들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하다.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활발한 신체활동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젊고 건강한 뇌를 만들 수 있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최고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 호기심을 가지고 스마트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투자와연금TV'에서도 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님을 모시고 직접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 어떻게 하면 노화를 늦추며 건강하게 나이들어 갈 수 있을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썸네일을 클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