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의 성공적 코스피 데뷔,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로봇주의 질주는 ‘증시를 뜨겁게 달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로봇과 AI(인공지능)가 더 이상 상상 속의 산물이 아닌 인간이 체감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춰간다는 것이다. 카페와 식당에서 서빙하는 로봇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챗GPT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늘어난다.
인간은 이제 AI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AI가 고도로 발달해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지배계층이 AI를 착취하며 로봇을 포함한 피지배계층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내일을 열 것이라 우려한다.
최고의 스토리텔러가 모인 영화판에서도 로봇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왔다. 명감독들이 그린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자.
그녀
AI와 연애 시작한 그, 고독의 끝을 꿈꾸다
때로 우리가 연애 상대에게 실망하는 이유는 세속적인 모습에 있다. 사랑하는 이의 고결함에 끌린 이유로 상대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찌든 면모를 보여도 ‘다 똑같다’며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 발붙일 일이 없는 OS(운영체제)와의 사랑은 어떨까. 아이폰의 iOS에서 구동되는 인공지능 비서 시리와 연애하면 실망할 일도 없을까.
<그녀>(2014·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OS와 사랑에 빠진 남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다. 타인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로 일하지만, 정작 자신은 인간의 감정에 지쳐버렸다. 아내와 따로 살게 된 이후로는 줄곧 우중충한 인생을 살던 그는 OS에 사만다라는 이름을 붙여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만다가 점차 진화하면서 테오도르와 빚는 마찰을 담는다. 그녀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지만 육체는 없는 자기 존재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과연 인간과의 연애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았던 테오도르는 OS인 그녀와의 사랑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조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가 OS와 심각한 관계로 발전하는 남자의 희열과 좌절을 깊은 연기 내공으로 표현해낸다.
<그녀>를 볼 수 있는 OTT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U+모바일tv
플루토
인간에게 인권 있듯 로봇에겐 ‘로봇권’ 있을까...
세상을 증오하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그는 거금이 투입된 수술로 목숨을 건졌지만, 시력을 잃었다. 어머니는 병든 그를 버리고, 부자를 쫓아갔다. 그는 로봇을 증오하게 되는데, 아마도 로봇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약한 자신 대신 강한 부자를 쫓아간 사건은, 강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심어줬다.
노쇠한 그에게 어느 날 로봇 집사 ‘노스 2호’가 찾아온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노스 2호를 그는 거부하지만, 점점 애정을 느낀다. 노스 2호는 그가 어머니에 대해 오해한 사실을 알려준다. 엄마는 부자를 사랑한 게 아니라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늘 그의 옆에 있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몰랐을 뿐이다. 이를 알게 된 그는 엄마와 로봇, 그리고 세상을 용서하게 된다.
<플루토>(2023·감독 카와구치 토시오, 원작 우라사와 나오키×데즈카 오사무)는 노스 2호의 죽음을 다룬다. 노스 2호를 비롯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로봇들이 차례로 죽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로봇 경찰 게지히트 형사와 소년 로봇 아톰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도중에 세상의 폭력적인 민낯을 마주한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로봇에게 ‘로봇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영화는 가슴을 깊이 울리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다.
<플루토>를 볼 수 있는 OTT : 넷플릭스
에이 아이
로봇을 창조한 인간, 이제 조물주의 윤리를 고민할 때
부부의 아이가 냉동인간이 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아들의 불치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냉동인간으로 두려고 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부부도 지쳐갔다. 결국 남편의 제안으로 감정을 지닌 최초의 인조인간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을 입양하게 된다. 처음엔 로봇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아내도 데이빗의 순수한 모습에 점차 맘을 연다.
그러나 불치병 아들이 극적으로 치료돼 집으로 돌아오며 가족의 동행에도 균열이 생긴다. 인간인 형과 로봇인 동생의 마찰이 심해지면서다. 부부는 두 아들 모두 인간이었다면 고민하지도 않았을 결정을 내린다. 데이빗을 오래된 TV처럼 버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신에게 ‘어떻게 이토록 가혹할 수 있냐’고 묻는다. <에이 아이>(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질문의 방향을 인간에게 돌리는 작품이다. 어느덧 피조물에서 조물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인간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창조주의 윤리’에 대한 얘기다. 집안에 들인 로봇들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물을 날이 머지않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