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선택한 시기부터 다시 인생을 산다고 하면 나는 20살 청춘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것 같다. 청춘이 마냥 좋은 것 같지만, 아니다. 청춘을 생각할 때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미숙하고 무모하고 유치하고 거칠고 시행착오투성이라는 사실은 무시한다. 그 당시 나는 젊음이 주는 자유분방함과 도처에 열려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돈 없고, 학력 없고, 친구 없는 젊은이에겐 무기력과 불안만이 가득했다. 젊음은 나에겐 불안전과 혼돈이었다.
20살 청년 시절보다 지금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그때보다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식과 경험은 나이에 비례한다. 꾸준히 배워 지식을 쌓고,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혜와 깨달음을 건져 올린다. 나이가 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실패의 횟수도 줄어든다. 불안과 혼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서 배움을 중단하면 지식은 늘지 않고 깨달음 또한 메말라 버린다. 그래서 평생 어둠 속에서 배회하고, 미망에 갇혀 헛된 것을 좇고, 미신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개인의 선입관이나 신념에 맞춰 세상을 해석하거나, 남에게 정의로움을 들이대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둘째, 그때보다 사람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결혼하기까지 사기를 많이 당했다. 다 믿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 울분을 토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문제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조그마한 이익 앞에 180도 태도를 바뀐다. 돈과 권력 앞에 초연한 사람은 이순신 장군 빼고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알고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려야 인생이 순탄하다.
믿지 못할 것 중 제일 먼저 줄을 그어 삭제해야 할 것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결연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내가 사람을 가릴 때의 기준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은 것인 양) 두 번 세 번 권하면서 질척거리는 사람, 돈, 보증과 같은 부탁을 가볍게 하는 사람, 자기 일엔 무책임하면서 정작 남의 일에 (만약 무엇무엇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 등이다. 이런 사람과는 조용히 관계를 끊는다. 그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