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가 치매일 것 같다. 건강하지 못한 장수(長壽)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치매 없이 건강하게 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전적인 원인 때문에 치매에 걸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의 생활습관을 바꿔 치매를 막을 수 있다면 즉시 실천해야 한다. 행복한 노후는커녕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신체는 늙어도 ‘젊은 뇌’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습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의사들은 같은 나이대 동료보다 뇌 기능이 20~30년 더 건강한 초고령자를 확인했다. 80세 이상인데도 인지기능이 50대인 이들을 ‘인지적 슈퍼 에이저(Cognitive SuperAger)’라고 부른다.
미국 시카고대 신경심리학과 에밀리 로갈스키 교수와 컬럼비아대 신경심리학과 야코브 스턴 교수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로 평가받는다. 로갈스키 교수는 ‘슈퍼 에이저(SuperAger)’란 개념을 가장 먼저 제시했으며, 스턴 교수는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지 예비력’은 노화나 질병이 찾아와도 뇌 기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인지 회복력’을 말한다. 즉, 충분한 ‘인지 예비력’을 갖추면 치매를 예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예상치 못한 재정 위기에 대비해 ‘비상자금’을 마련해 두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인지 예비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스턴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제안한다.
△ 끊임없는 학습
△ 다양한 직업 경험
△ 역동적인 사회활동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세가지를 생활 속에서 꾸준하게 실천해도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인지적 슈퍼 에이저’의 비밀을 찾는 로갈스키 교수는 좋은 유전자와 더불어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에 더해,
강인한 삶의 태도와 끈끈한 사회적 유대감이
‘젊은 뇌’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스턴 교수가 말하는 ‘역동적인 사회활동’이나 로갈스키 교수가 강조한 ‘끈끈한 사회적 유대감’은 사실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원만한 인간관계는 치매 예방의 자양분이나 다름없다.
난청이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치매 정복을 위한 다른 연구에서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프랭크 린 교수는 청력손실과 치매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청력이 나쁜 70~84세의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역학조사를 펼쳤다. 한쪽은 보청기를 지급하고, 다른 쪽은 보청기 없이 지냈다. 결과적으로 보청기 착용 집단에서 인지 기능 저하가 약 50% 감소했다. 청력 손실이 치매위험과 관련이 있는 이유로, 린 교수는 세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난청이 사회적 고립을 초래해서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지고,
둘째는 뇌가 난청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기억능력을 떨어뜨리며,
셋째는 난청이 청각자극을 감소시켜 뇌의 수축을 야기한다고 본다.
휴대폰이 치매를 막는다고? 디지털 기술 예비력의 힘
생활습관에서 치매를 예방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국 텍사스대 자레드 벤지 교수는 ‘디지털 치매 가설’을 연구했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을 많이 하면 인지기능이 떨어져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게 ‘디지털 치매 가설’의 핵심이다. 그러나 벤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치매 가설’은 성립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노인들의 뇌 건강이 좋았다.
50세 이상의 41만여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이용이 인지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는데, 디지털 기기를 활발하게 사용한 그룹의 인지기능 장애 위험이 58%나 낮아졌다. 그는 지난 2023년 ‘네이처 인간행동저널’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벤지 교수는 ‘디지털 치매가설’을 부정하면서 ‘디지털 기술준비 가설(The Technological Reserve Hypothesis)’을 주창했다. ‘인지 예비력’이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스턴 교수의 주장처럼 그는 ‘디지털 기술 예비력’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 예비력’이 어떻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까. 디지털 기기 활용을 통해 디지털 기술을 습득하고 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인지장애 위험이 줄어든다는 게 벤지 교수의 생각이다.
뇌를 위한 최고의 영양제는 바로 좋은 사람들
청력과 디지털 기기 활용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해 보면 ‘건강한 인간관계’가 핵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스턴 교수의 ‘인지 예비력’이나 로갈스키 교수의 ‘인지적 슈퍼 에이저’의 핵심도 따뜻한 인간관계였다.
하버드대가 1938년부터 추적관찰해온 ‘성인발달연구’에 따르면, 성공과 행복의 비결은 ‘사회적 근력(Social Fitness)’이었다. 결국 다른 어떤 조건보다도 따뜻한 인간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노후의 최대 두려움인 치매에 맞서는 안전판인 셈이다.
그렇다면 ‘따뜻한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의 책임 연구자인 로버트 월딩거 교수는 다음 7가지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