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아야세 하루카)와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는 15년 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아간다. 부모의 돌봄 없이도 씩씩하게 자란 세 사람은 그곳에서 중학생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는데. 큰언니 사치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스즈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을 발견한 뒤 안쓰러움을 느끼고, 자신들과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서 아버지의 아내와 만납니다. 해당 여성은 아버지가 세 번째로 결혼한 상대였는데요. 아버지의 첫 아내는 세 자매의 엄마, 두 번째는 세상을 떠난 스즈의 엄마였습니다. 다시 말해, 장례식의 여성은 막내 스즈에게도 의붓어머니였던 셈이죠.
의붓어머니는 아버지 장례식의 조문객들에게 인사하는 역할을 스즈에게 맡기려고 하는데요. 이때 큰언니 사치가 가로막습니다. 분명히 어른이 해야 할 일을 어린 아이에게 맡기는 건 옳지 않다는 이야기죠.
큰언니는 장례식에 자리하는 동안 유난히 의젓한 스즈의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의 역할을 떠넘기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스즈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살기 위해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건 큰언니의 인생 경험과도 닮았습니다.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부모를 대신해 두 동생을 돌보며 애어른으로 살아 왔죠. 그래서 큰언니는 처음 본 이복동생에게 제안합니다.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 다 일하니까 너 하나 정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언니들과 함께 살게 된 스즈는 처음으로 자신을 환대해주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한편에는 미안한 마음을 키웁니다. 결국 언니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간 것은 자기 엄마였고, 그 외도의 결과로 태어난 게 자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언니와 함께 올라간 언덕에서 스즈는 친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남들에게 비난받는 엄마라도 아이에겐 그저 그리운 엄마일 뿐이었죠. 언니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한 번도 꺼내지 못한 마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그리움을 숨기고 살아온 막내를 큰언니는 꽉 껴안습니다. 이제는 엄마 이야기 원하는 만큼 해도 된다고요.
스즈에겐 이제 진짜 집이 생긴 셈입니다. 집은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서죠. 자기 속을 거리낌 없이 꺼내 놓을 수 있는 곳이어야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집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스즈는 집에서 철없는 행동도 할 것이고, 언니들 속도 썩일 것입니다. 집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요.
이 영화는 스즈라는 소녀가 한 가정에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사치라는 어른이 소녀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치의 입장에서 보면 공평한 이야기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사치 또한 ‘어린 시절을 빼앗긴’ 소녀 가장이었으니까요. 스즈의 인생에는 사치와 같은 어른이 있지만, 사치에겐 그런 어른이 없었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든 어른이 된 이상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죠. 결핍 많은 유년기를 보냈다고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다른 어린 영혼에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중요한 건 내 어린 시절의 생채기를 계속 핥으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일이라고요.
사치는 바닷가에서 스즈의 뒷모습을 보며 다른 자매들에게 얘기합니다. ‘이런 동생’을 남겨준 아버지는 다정한 분인지도 모른다고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이복동생을 품는 동안 사치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이건 어른은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른으로서 누군가를 품는 과정에서 자기 상처 또한 보듬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