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이 멋진 모험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 글 : 신미화 /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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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30일 저녁, 일본 경제의 심장부라 불리는 일본경제신문사(日本経済新聞社, 통칭 닛케이 신문) 사옥에서 한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송별회 대신 열린 긴급 부회(部会)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회사에 들렀지만, 내일부터는 이곳에 올 일도 없어진다. 41년의 기억을 나눈 뒤 후배들이 기념으로 준비한 Aurora 볼펜을 건네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세요.”
그 한마디가 그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송별 인사였다.
그의 이름은 아이카와 히로유키(相川浩之).
이날을 끝으로 그는 모든 직함과 권위를 내려놓고, 이제 막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쓰기 시작한 65세의 ‘무명의 기자’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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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 사라졌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이카와 씨가 41년간 몸담았던 일본경제신문은 2025년 1월 기준 발행부수 235만 부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 권위의 경제지다. 정·재계는 물론 산업·금융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 대표 미디어다.
퇴직 다음 날 아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묘한 정막이었다. 코로나 시기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생활 리듬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닛케이”라는 거대한 배경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는 말한다.
“조직에 너무 깊이 젖어들면 회사를 떠난 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대형 은행 임원까지 지낸 사람이 퇴직 후 Zoom 회의에조차 접속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유능했던 사람들이 조직 밖에서는 ‘디지털 문맹’이자 ‘생활 무능력자’가 되어버리는 현실. 그는 이를 ‘조직인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퇴직 후 처음 3개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 안을 정리하며 오랫동안 몸에 밴 ‘닛케이 기자’라는 정체성을 천천히 걷어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명함을 떼고 나서도 사람들은 내 글을 읽어줄까?”
그에게 퇴직 이후의 삶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거대 조직의 일부로 살며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자, “회사가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는 치열한 탐색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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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좌천, 그래도 꺾이지 않았다
41년의 회사 생활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상사에게 아부하지 못하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후배들을 아끼고 타인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권력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 성격 때문에 현역 시절 세 차례 이른바 ‘좌천’을 경험했다.
가장 큰 시련은 생활정보 잡지 출판 자회사로의 파견 시절이었다. 신잡지 창간 아이디어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본사에서 온 그에게는 제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철저한 ‘외부인 취급’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의 길을 만들기로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기획서를 만들어 사장에게 직접 제안했습니다. 결국 디지털 정보지 ‘닛케이 제로원’을 창간하게 됐습니다.”
조직이 주는 역할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훗날 1인 출판사를 설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영업부와의 충돌 끝에 2년 반 만에 부서를 옮겨야 했지만, 그 경험이 독립 이후 큰 힘이 되었다.
퇴직할 때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그린 ‘라이프라인 차트’를 선물했다.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좌절과 회복의 기록이었다. 후배들은 이를 두고 ‘아이카와씨의 어떤 기사보다 뛰어난 솔직한 리포트’라며 절찬했다.
“잡초 같은 생명력. 그것이 노후를 다시 시작하는 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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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자유로운 생산자’로 다시 태어나다
많은 사람은 65세를 ‘끝의 시작’으로 여기며 두려워한다. 수입은 줄고 체력은 떨어지며 사회에서 잊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65세는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기로 반드시 만들고 싶습니다.”
그에게 퇴직은 끝이 아니라, 회사라는 배경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연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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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직후 그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거창한 자서전이 아니라 매일의 블로그였다. 그날 느낀 것과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결국 『LINE 블로그에 쓴 65세의 인생을 걷는 법』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Amazon 출판 방법, 유통 계약, 홍보까지 모두 스스로 배우며 그는 대형 언론사 기자가 아닌 ‘독립 저널리스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최근작 『초고령사회 전문가 12인에게 묻는 노년과 마주하는 법』은 Amazon 독자들 사이에서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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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배우다 ― ‘데스 카페’
그의 두 번째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죽음’이다. 2016년 일본 사회에 ‘데스 카페’ 문화를 소개한 그는, 금기시되던 죽음을 일상의 대화로 끌어왔다. 죽음을 차와 과자를 곁들이며 가볍게 이야기하는 이 낯선 문화를 취재하며, 그는 오히려 삶의 빛남을 발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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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카페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 타인의 발언을 부정하지 않는다
・ 전문가처럼 조언하지 않는다
・ 그 자리의 이야기를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솔직하게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택에서 평온하게 노쇠로 생을 마감한 장모님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확신했다.
“노쇠와 죽음은 밝다기보다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할 때 인간은 더 깊이 감동합니다. 손자를 만난 순간의 기쁨, 움직일 수 없게 된 나를 돌봐주는 가족에 대한 감사… 죽음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우리의 남은 생은 더 찬란하게 빛납니다.”
초고령사회가 그의 평생 주제가 된 이유
그가 본격적으로 ‘노년’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가 발행한 2010년 12월에 낸 『2030년 초고령 미래』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이후 이 책을 읽고, ‘눈에 보이지 않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죠.”
당시 그가 겸직으로 근무하던 단파방송 라디오 자회사는 경마·의료·주식 등 특정 고정 청취층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인터넷 라디오 ‘라디코(radiko)’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는 “새로운 플랫폼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당시 아직 충분히 보도되지 않았던 초고령사회라는 주제에 과감히 도전했다.
프로그램은 6개월 계약으로 시작되어 형태를 바꾸며 이어졌다. 월요일은 「목표! 평생 현역 사회」, 화요일은 「시니어 예비학교」, 수요일은 「시니어 비즈니스 연구소」, 목요일은 「이상적인 장수사회를 말하다」.
이 인터뷰들은 닛케이 전자판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늘 상위 랭킹에 올랐고, 때로는 그날 1위를 차지하는 인기 기획으로 자리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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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은 퇴직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날아라! 핫 에이지」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노년 문제를 발신하고 있다. 이미 65세를 넘긴 그는 지금도 ‘고령자가 만드는 고령자의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초고령사회를 취재하며 얻은 결론은 단순하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도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는 계속 쓰고 기록한다. 노화를 이야기하는 일은 사회보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세대 간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는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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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멋진 모험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불안을 느끼는 한국 시니어들에게 그는 세 가지 조언을 건넨다.
첫째, 젊은 세대와 연결하라.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고령자는 고립된다. 젊은 세대의 부담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고령자는 결코 외롭지 않다.
둘째, 삶의 마지막을 가족과 미리 이야기하라.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가족에게 짐이 되기 전에, 내가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지 가족과 공유해야 한다. ACP(Advance Care Planning, 어드밴스 케어 플래닝)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 ACP가 ‘인생회의’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마지막까지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프로세스로 정착되고 있다.
셋째, 조직이 아니라 ‘개인’으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라.
명함이 없어도 글을 쓰고, 요리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개인이 되라. 지금도 그는 매일 집안일의 절반을 담당하며, 저녁식사를 직접 요리하여 아내와 소소한 일상을 즐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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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Amazon에서 책 주문이 들어오면 그는 직접 포장해 우체통으로 향한다. 자신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신입 기자처럼 가슴이 뛴다.
퇴직 후 처음으로 그는 더 이상‘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시작했다.
조직도, 직함도, 명함도 내려놓았지만, 그가 쌓아온 시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경험은 이제 ‘회사에 속한 기자’가 아닌 ‘자기 삶을 기록하는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로 그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는 앞으로
『75세의 인생을 걷는 법』
『85세의 인생을 걷는 법』
언젠가 『95세의 인생을 걷는 법』까지
계속 써 내려갈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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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살아가는 시간
명함을 내려놓은 그날, 그는 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로소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늙어도 모험은 계속됩니다. 쇠약해지는 나 자신마저 재미있게 관찰하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의 노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오래 써내려 가야 할 한 편의 기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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