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5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고정된 월급을 받던 정규직 월급쟁이에서 매년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사회생활의 시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4년이다.
짧은 배움을 뒤로 하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동네 철공소에 들어갔었다. 물론 나의 적성이나 능력 등은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일주일 정도 일한 뒤, 사장님의 오토바이 뒷 좌석에 실려 이번엔 프레스 공장으로 짐짝처럼 옮겨졌다. 그분의 허리춤을 잡고 오토바이 뒷 좌석에서 느꼈던 위태로움은 나이 든 지금도 생생했다.
"내 인생도 글러먹었구나"라는 최초의 자학이 독백처럼 튀어나왔다. 새로 들어간 공장은 금형에 재료를 넣어 고무호스를 찍어내는 프레스 공장이었다. 1년 정도 일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뚫고 공장에 향했고 어둠을 뚫고 집에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누였다. 어두운 새벽에 걸었던 그 길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으로 향하는 길과 같았다. 영원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과 막막함에 나는 두렵고 외로웠다.
군 제대 후 그 연옥으로 향한 길에서 나를 구원해 준 곳이 A증권회사였다.
1988년 3월에 들어왔다. 짧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 그 덕에 결혼도 하고 애들도 키우고 집도 장만했지 싶다.
그렇게 운 좋게 A증권회사에 들어와 27년간 근무하다 2015년에 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이다. 출근하는 사무실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급여가 절반으로 줄었다. 비로소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엄동설한에 잠옷 바람으로 문밖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을 대략 5년 정도로 잡았다. 그 5년 동안 무엇을 배워 어떻게 먹고살까를 고민했다.
먹고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첫째, 투자로 먹고사는 방법.
둘째, 사업으로 먹고사는 방법.
셋째, 노동으로 먹고사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