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모임의 대화 주제는 ‘존재감’이었다. 누구라도 존재감의 문제로 고민하겠지만 은퇴자들은 더 심한 것 같다. 이해는 간다. 현역일 때는 가족이나 회사 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은퇴하고 나니 나를 알아주고,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밥 같이 먹자고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으니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미친 존재감’을 발휘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하지만 누군가, 단 몇 명이라도 이 세상에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나의 존재감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막힌 존재감>의 저자 앤드류 리(Andrew Leigh)가 지적했듯이, 존재감의 최종 목적은 결국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고, 나와 주변인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일 텐데, 어떻게 해야 나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게 쉽지 않은 것이다.
안타까운 건 우리 주변에 ‘부정적 존재감’을 보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엊그제 지인들이 만난 자리에서도 부정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예를 들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걸핏하면 화를 내거나 자기 연민이 지나친 사람, 노상 남 탓하는 사람 등등.
그런데 L씨가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내 생각엔 지나치게 자신을 칭찬하거나 자랑하는 것도 존재감을 낮추는 것 같아요. 지인 중에 만나기만 하면 자기 칭찬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식이죠.
‘글쎄, 동창들이 나만 보면 어찌나 밥을 사라고 하는지.... 내가 제일 잘 나간다나 뭐라나.’
그 사람은 그럴수록 자기 존재감이 낮아지는 걸 모르는 모양이에요.”
L씨의 말에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 맞아. 그런 사람 꼭 하나씩 있어.”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지 않아?”
물론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자존감도, 존재감도 높아지는 것 같다. 우리는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어서 누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줘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니까. 타인의 관심과 인정이 줄어들면 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성이라는 근육도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칭찬은 나를 종종 착각에 빠뜨린다. 누군가로부터 “어머, 정말 친절하세요. 이런 것도 챙기시고.” 라는 칭찬을 들었다고 치자.
그가 속으로 ‘바쁜 나한테 이렇게 쓸 데 없는 친절을 베푸시고, 오라 가라 하고... 아주 나를 힘들게 하려고 마음을 잡수셨군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칭찬을 받았다고 혼자 착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의 칭찬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건 위험하다. 칭찬이란 어쩌다 한번 받게 되면 점점 더 집착하게 되고, 어느 틈엔가 나도 모르게 중독되는 그런 것이니까. 게다가 칭찬하는 사람들은 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칭찬하는 것인데, 난 그들이 나라는 사람 전체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므로 “와 대단하시다.” 라는 남들의 칭찬은 나 자신을 옥죄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