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배우기 위해 이번에는 개그맨이 되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연기학원을 등록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수소문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연극판에서 빗자루 질과 포스터 풀칠을 수년간 하면서 연기를 익히며 수백 수천 번의 오디션을 보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단역 배우들조차 경력이 보통 20년이 넘으니 이제와서 준비하여 그들과 경쟁해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에게 일말의 재능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2년여의 시간을 직장인 연극단과 학원을 전전하면서 애써 봤지만 몸에 무리만 생길 뿐 연기가 느는 건 참 더디었다. 배우에 등급을 굳이 나누자면 주연, 주조연, 조연, 조단역, 단역, 이미지단역이 있다. 최하위등급인 대사 없는 이미지 단역조차도 에이전시에서 연기 시연 영상을 요구하니 맨땅에 헤딩하는 경력 짧은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학생단편에 도전한다. 그마저도 프로필을 보낸 후 서류 합격을 하고 오디션을 거쳐 통과되어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역할을 맡아도 대본리딩에 참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까지 마치고서 받은 출연료가 고작 10만원… 3일을 투자했는데 알바보다 못하다.
그래도 연기는 꼭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시니어 모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남에게 제대로 잘 전달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연기 아닐까. 남에게 물건을 팔거나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때, 강의를 하는 강사,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더욱 필요할 것 같다.
코믹연기로의 전환이 유튜브와의 인연으로
기존 연기자들과는 출발점이 달라 그들과 경쟁해서는 이길 방도가 없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그들이 도외시 하는 분야가 뭘까? 내 캐릭터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 연기 코치나 동료들의 조언에 의하면 자신이 망가지는거에 두려움이 없으니 코믹 연기가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개그맨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공중파에 개그코너가 없어져 호구지책으로 유튜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그맨들 중 상당수가 백만명 가까운 구독자가 있는 채널로 성공을 거두었다. 개그라는 것은 연기도 필요하지만 순발력과 남을 웃겨야 한다는 마음이 커야 해서 시니어 연기자들이 쉽게 접근 못하는 분야이다. 일 년여 동안 개그채널에 매일을 수십 통 보내고 출연료가 낮아도 개그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출연하다 보니 어느덧 시니어 개그맨이 되어 있었다.
배우는 평생 배우는 직업이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써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남들이 하려는 방송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기존 배우들이 등한시하는 웹드라마(인터넷에 방송되는 드라마)를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 달에 3-4회 정도 웹드라마에 출연 중이며(주연은 아니고 조연으로ㅎㅎ) 그래도 현장에 가면 배우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