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은 33년의 펀드매니저 경력에서 최악의 해였다. 1930년 우리는 50.5%의 손실을 입으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1931년에 손실률은 다시 16%로 완화되었고, 1932년 초의 손실률은 겨우 3%에 불과했다. 이것은 실로 승리나 다름없는 성과였다. 그러나 1932년 말이 되자 원금은 22%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워렌 버핏의 스승, 현대 증권 분석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레이엄은 30대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는데요. 자신과 지인들의 돈을 모아 1926년 출범한 벤저민 그레이엄 컨소시엄은 25.7%라는 수익률을 거두었죠. 이후 그는 자신의 성과에 도취 돼 더 많은 레버리지를 활용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대공황을 맞이하며 운용자산의 80%를 잃는 실패를 겪게 됩니다. 그레이엄의 인생에서 이때는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를 힘들게 만든 건 손실보다도 ‘미래의 불확실성’이었죠.
이때의 경험은 그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생활 방식과 투자 철학 180도 바꾼 것이죠. 그후 1935년 손실을 회복하고도 약 10년동안 10%가 넘는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쓰디 쓴 실패를 맛본 후 추구하게 된 생활 방식과 투자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