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말 지혜도 가져간다면, 우리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네요.
“그렇죠. 사람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을 합니다. 꽃길만 걸어서는 성장을 할 수가 없어요. 항구를 떠난 배도 험한 풍파를 겪어야 항해술이 발전하죠.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이 지구별에 왔습니다.”
Q. 정 교수님 본인이 하시는 죽음 준비 중에 주변에 권하고 싶은 게 뭔가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죠. 사전장례식도 좋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정형외과 개업의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는데 70여 세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사진 전시회를 했어요. 일종의 사전장례식이었죠. 미국의 세계적인 완화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저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 말>에서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이 네 마디를 제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삶을 꾸리는 말들이기도 하죠. 만일 만나서 용서를 구할 수 없다면 마음으로라도 용서를 구해야겠죠.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희망등록 등은 권할 때 작성해야 합니다. 저도 암 환자이지만 암 환자에게 유언장 이야기 꺼내면 ‘나더러 지금 죽으라는 소리냐’고 격하게 반응해요. 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작성을 하고도 가족에게 끌려다니는 사례가 많은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명 치료를 받지 않으려면, 평소 가족과 대화할 때 화제로 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 받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게 좋아요.”
Q. 가족 뜻에 따라 본인 의사에 반해 연명 치료를 하는 건 제도가 미비한 탓 아닙니까?
“그래서 당사자의 연명의료의향이 지켜지려면, 의료진이든 가족이든 본인 의사를 무
시하면 벌금을 물린다든지 처벌하도록 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는 의료진이 환자의 병명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건 함부로 얘기한다고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광암 수술을 받은 지 6년 됐다.
“보통 5년 지나면 완치됐다고 하지만, 7~8년 후 재발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암이 생기는 이중암·삼중암도 있습니다.”
Q. 암 등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병으로 투병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주시죠.
“죽음의 특징 중 하나가 예측을 불허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암은 루게릭병, 뇌졸중, 치매 등과 달리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병이죠. 여명(餘命)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조기 발견해 완치될 수도 있어요. 암 가족력이 없어도 요즘은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가족도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어요. 죽음 준비죠.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겐 죽음을 교육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Q. 우리 선조들은 더러 곡기를 끊기도 했지 않습니까?
“자발적인 존엄 단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안 먹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을 때가 되어 안 먹는 거라고 할까요? 존엄사를 포함해 우리나라 정책결정자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거 같아요. 저출생이 심각한데 출산률이 낮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젊은 영혼이 자살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는 7년 전 죽음학 강의를 하러 갔다가 주최 측의 제안으로 청중과 함께 묘비명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무제한 여권을 가진 시간 여행자들이다.'라고 썼습니다.
죽음에 대한 강의를 마칠 때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학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 샤르댕이 한 말이죠.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 인간 체험을 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다’. 내가 영적인 존재면 나의 이웃도, 어느 날 밥 먹다 마주친 식당 종업원도 당연히 영적인 존재죠, 그렇다면 소위 갑질을 하거나 남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거죠. 이런 인식이 공유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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