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재산을 위협하는 숨어 있는 적: 인지장애와 과신
은퇴 이후, 특히 노년기에 노후재산을 축낼 수 있는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과신(過信)과 인지장애다. 이들 요소가 어떻게 노후재산을 위협하는지는 해외 연구논문을 통해 살펴보자.
스위스 루가노대학 마존나 교수와 미국 조지타운대학 페라치 교수는 미국 ‘건강은퇴연구(HRA)’ 자료를 토대로 인지장애가 노인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미시간대학교는 ‘건강은퇴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50대 이상의 2만명을 대상으로 1992년부터 2년마다 다면 조사를 진행한다.
두 교수는 인지장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0개 단어의 기억력 변화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2020년)에 따르면 평균 67세에 20% 이상의 기억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도의 기억력 상실은 치매 이전의 인지장애 상태이기에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연구자는 이처럼 20% 이상의 기억력 상실에 놓인 상황에서도 인지장애 사실을 인지하는 못하는 쪽과 인지한 쪽의 재산손실 정도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인지장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쪽의 재산손실 규모가 훨씬 컸고, 손실규모는 평균 6%에 달했다.
특히 재산 상위 50% 노인층에서 재산손실 규모가 더 컸다. 인지장애를 알고 있는 쪽보다 모르는 쪽에서 주식형 금융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재산손실이 더 많았다. 연구자들은 인지장애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무리하게 투자를 한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산손실은 ‘과신’의 결과물이었다.
미국 자산운용회사인 뱅가드도 비슷한 연구(2023년)를 했다. 뱅가드 연구원과 4명의 대학 교수들이 재정관리 권한 이양 시점이 노후재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55세 이상인 뱅가드 고객들 가운데 2489명이 분석 대상이었다.
연구 결과는 권한 이양 시기가 늦을수록 재산손실이 커졌다. 자체 분석 모델에 따른 추정 손실 비율은 무려 18%에 달했다. 너무 빠른 이양도 좋지 않았다. 보수적인 자산운용과 관리 수수료 비용 때문에 기회비용이 뒤따른 탓이다.
이양을 꺼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그렇다면 최적의 권한 이양 시기는 언제일까. ‘인지장애를 인식하면서 재정관리 능력을 막 잃어가기 전’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런 응답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권한 이양이 늦어지는 까닭은 인지장애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권한 이양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장애는 노후재산을 축내는 주범임에 틀림없다. 투자 관련 의사결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금융착취와 금융사기에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얄팍한 지식과 경험이 과신으로 이어질 경우 노후 재산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인지장애 여부를 수시로 검사 받고, 시장(市場)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리는 게 상책이다. 나이 들수록 자연의 순리를 따를 줄 아는 지혜가 중요하듯이, 노후재산을 온전히 지키려면 시장과 맞짱을 뜨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인지장애를 알아차렸다면 누구에게 재산관리인을 맡기는 게 좋을까. 재무전문가들은 특히 다자녀인 경우 형제자매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예 신탁회사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