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판을 바꾸다.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
60대 이상을 겨냥한 전용 금융상품이나 가전제품이 출시되면, 곧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어감을 누그러뜨리는 완곡어로 곧잘 쓰이는 ‘시니어’라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젠 이런 표현도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이제 60대는 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60대에 접어든 이들은 은퇴 이후에도 일하고, 배우고, 쓰는 데 적극적인 새로운 소비 계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변화는 더 분명하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카드 결제 금액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4.9%에서 2023년 21.2%로 크게 늘었다. 과거 노인들과는 소비력 자체가 달라졌단 얘기다.
더 공식적인 국가 통계를 봐도 이런 변화는 분명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60대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018년 240만 원에서 2023년 293만 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5.1%에 달하는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전체 가구의 소비 증가율이 4%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60대의 소비가 평균 이상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은퇴로 인해 고정적인 근로소득이 줄더라도, 일정한 현금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은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게다가 평균소비성향도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다. 60대의 평균소비성향은 2018년 73.1%에서 2023년 69.5%로 내려왔다. 즉 소득 대비로 보면 소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인데, 이 역시 저축 여력 혹은 금융 투자 여력이 그만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민간 카드데이터와 국가 통계에서 확인되듯, 소위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새로운 노인 세대는 지출 여력이 크게 늘었다. 과거 노년 소비가 절약에 기반한 생존형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60대는 더 풍부하고 능동적인 소비를 감당할 수 있게 됐단 건데. 그네들의 늘어난 소비 여력이 향하는 곳은 주로 여가 생활이다. “노인은 텔레비전만 본다”는 게 옛말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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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소비 대폭 늘린 ‘액티브 시니어’
구체적 통계를 살펴보자. 아직도 70대 후반 이상에서는 하루 여가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TV 시청에 할애하는 경향이 있지만, 60대 초반의 여가 풍경은 사뭇 다르다. 2022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60대의 월 평균 여가활동 참여 횟수는 15.2회로, 70대(13.2회), 80대(11.8회)보다 현저히 많다.
여가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70~80대는 ‘정적인 활동’ 위주로 TV 시청이나 종교 활동의 비중이 높고, 대체로 제한된 공간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60대는 걷기, 관광, 외식, 문화예술 관람처럼 능동적인 여가 활동에 대한 참여도가 높고, 공간적으로도 이동반경이 훨씬 넓다.
그렇다고 60대가 천편일률적인 여가를 보내는 것만도 아니다. 같은 60대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발하고 다채로운 여가생활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문화센터나 SNS 소모임 참여율이다. 요가, 필라테스, 공예, 그림 수업 등 오프라인 취미 강좌에 대한 수요는 60대 여성 중심으로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그 수요는 자녀 양육에서 손을 뗀 시점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60대 남성은 골프, 자전거, 바둑처럼 비교적 고립적인 취미 활동의 비중이 크고, 커뮤니티 중심의 활동에는 여전히 낮은 참여율을 보인다. 남녀 모두 생활체육 참여율은 50%를 넘기지만, 세부 종목과 동행 여부를 보면 성별 여가 문화의 차이는 여전히 뚜렷하다. 결국 ‘노년의 여가’라는 말을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하긴 어려운 시대가 된 셈이다. 나이뿐 아니라 성별, 사회적 관계망, 경제력, 그리고 디지털 적응도에 따라 여가의 모습은 복수형으로 나뉜다.
이처럼 여가 시간의 재구성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소비 구조의 전환과도 맞물린다. 특히 건강, 여행, 취미, 디지털 소비의 네 가지 영역에서 60대 소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첫째, 건강과 웰니스 분야는 노년 소비에서 꾸준히 1순위를 차지하는 항목이다. 건강기능식품, 실버 피트니스, 맞춤형 식단 서비스 등은 의료 소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60대의 지갑을 열게 한다.
둘째, 여행·레저 지출 역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팬데믹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해외여행 수요는 60대가 주도하고 있으며, 항공권 결제 건수만 해도 2019년 대비 139% 이상 증가했다는 카드사 보고도 있다.
세 번째는 취미와 평생교육 영역이다. 특히 문화센터, 주민 강좌, 온라인 클래스 수강률은 50~60대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성장 지향적 여가’에 대한 수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그런데 이런 변화들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소비에서 벗어나,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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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약자에서 벗어난 액티브 시니어
아직 온라인 쇼핑 이용률이나 모바일 결제 빈도에서 60대는 젊은 세대에 비해 낮지만, 증가 속도만큼은 가장 빠르다. 2019년 8.5조 원 수준이던 60대의 온라인 소비 거래액은 2023년 28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식품, 의류, 항공·숙박, 생활가전 순으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노년과 흔히 결부되던 ‘디지털 약자’라는 인식은 액티브 시니어 세대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과거 노인들의 주된 소비 패턴이 생필품을 포함한 방어적 소비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는 가치 중심 소비, 경험 중심 소비로 전환 중이다. 그런 변화를 추종하는 핵심 요인이 액티브 시니어의 활발한 온라인 소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소비는 현재 ‘노인’들과는 얼마나 다를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07만 원 정도다. 전체 가구 평균(289만 원)에 비하면 70% 수준에 그친다.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가 전체 지출의 20.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보건(12.8%), 주거·광열비(12.1%) 순이다.
노후 대비를 하는 분들은 이 수치를 노후 생활비의 기준선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이 지출 구조는 오늘날 액티브 시니어가 주도하는 생활 방식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현재 통계에 잡히는 ‘65세 이상 가구’의 다수는 70대 후반, 80대 이상의 고령층이다. 이들은 소비보다 절약에 익숙하고, 외부 활동보다 집안 생활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현재의 평균값은 ‘옛 노인’의 생활 기준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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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사는데 쓴다
지금의 60대, 특히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병원비와 공과금, 식비 같은 고정 지출 외에도, 골프나 여행, 문화생활, 손주 돌봄, 취미나 학습 활동에 적잖은 비용을 쓰고 있다. 생활을 꾸리기 위한 지출 외에도, ‘나답게’ 살기 위한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소비는 나이가 들었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된다. 과거의 노후가 ‘버티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누리는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소비패턴 변화를 고려하면, 은퇴 후 재무 계획을 세울 때 단순히 현재의 노인 평균 지출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 지출 시나리오를 직접 짜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고정비는 물론이고, 내가 어떤 활동에 돈을 쓰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고 싶은지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요즘의 노후는 한 가지 형태가 아니다. 같은 60대라도 누구는 매달 문화센터에서 두세 가지 수업을 듣고, 누구는 손주를 돌보느라 교통비와 식비가 배로 들며, 또 누구는 부부가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근교 여행을 다닌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따라 지출하는 액수와 패턴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바른 은퇴 설계는 ‘나’에서 시작
지금 시점에서 노후 생활비를 따져보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남들의 평균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이다. 내가 바라는 노후가 어떤 것인지, 내가 노후에 어떤 활동들을 하며 보내고 싶은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기준에 따라 남들보다 소비를 더 줄이는 삶도, 외려 대폭 늘리는 삶도 가능하다.
주말 등산과 국내 여행에 집중하는 삶을 보낼지, 골프 등의 럭셔리 스포츠에 집중하는 삶을 택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 봉사와 문화생활을 즐기는 삶을 보낼지에 따라 재무 플랜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후 대비를 원하는 분들은 나 스스로를 더 열심히 성찰하고 돌아봐야만 한다. 내 지향과 선호에 따라 노후 비용이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내 선호에 맞춘 바른 노후 설계가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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