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걱정이 시작됐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
👉 글 : 김재윤 / 재활의학과 전문의, 서울수정형외과의원 대표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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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 반응이 묘합니다.
반갑기도 한데, 어딘가 불안하기도 한 표정입니다. 오래 사는 건 좋은데, 오래 사는 동안 내가 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니까요.
암이나 심장병이 두려운 이유가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면,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몸은 살아있는데, 기억이 하나씩 지워지고, 가족 얼굴이 낯설어지고, 끝내는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는 것.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내 의지와 다르게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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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걱정하기 시작한 분들이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문 사설을 꼬박꼬박 읽기 시작하거나, 휴대폰에 스도쿠 앱을 깔거나, 영어 단어장을 다시 펼치거나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뇌를 써야 치매가 예방된다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틀린 생각도 아닙니다. 인지 활동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은 실제로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쌓인 연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치매 예방의 핵심 활동은 책상 앞이 아니라, 운동화 앞입니다. 뇌를 직접 자극하려는 노력보다,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뇌를 보호하는 데 더 강력하다는 증거들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뇌도 좋겠지”라는 막연한 내용이 아닙니다. 운동은 뇌 신경세포를 살리고, 해마 (hippocampus)를 키우고, 치매의 원인 물질이 누적되는 속도를 늦춥니다.
근육이 빠지면 뇌도 함께 빠진다
앞서 2화( 2화 보기 클릭)에서 근감소증이 낙상과 입원율을 높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근감소증의 파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 대규모 연구들을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 근감소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경도인지장애와 치매의 위험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근육량이 많을수록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Aβ protein) 의 뇌 내 축적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영상으로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여의도성모병원 임현구 교수 연구팀은 치매가 없는 환자 528명을 대상으로 뇌 MRI와 아밀로이드 PET를 분석한 결과, 근육량·근력·신체 기능 세가지 모두 인지기능 장애와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 연구는 국제 알츠하이머 학술지 Alzheimer's & Dementia에 게재되었습니다 (Alzheimer’s & Dementia, 2024).
근육이 빠지는 것과 뇌가 흐려지는 것, 이 두 가지는 따로 노는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는 두 개의 가지입니다.
근육이 뇌에게 보내는 신호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 답은 근육이 배출하는 호르몬, 마이오카인 (myokine)에 있습니다.
근육은 수축할 때마다 다양한 화학 신호를 혈류로 내보냅니다. 이 신호들은 간, 심장, 췌장을 지나 뇌에까지 도달합니다. 근육이 "나 지금 일하고 있어"라고 온몸에 전달하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뇌는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며,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반응합니다.
이 신호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BDNF, 한글로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입니다. 거름이 식물을 키우듯, BDNF는 신경세포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 물질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BDNF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줄어든 만큼 해마가 위축되며, 기억력이 함께 흐려집니다. 운동은 이 BDNF를 가장 강력하게 끌어올리는 방법입니다.
2011년 미국 피츠버그대 Erickson 교수 연구팀은 120명의 고령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1년간 주 3회 걷기 운동을, 다른 그룹은 간단한 스트레칭만 시켰습니다. 1년 후 MRI를 비교한 결과, 걷기 운동 그룹의 해마 부피가 약 2% 증가했습니다. 반면 스트레칭 그룹의 해마는 더 작아져 있었습니다. 해마 부피의 2% 증가는, 노화로 인한 해마 감소를 1~2년 분량 역전시킨 것에 해당합니다. 뇌는 고정된 기관이 아닙니다. 운동이라는 자극에 반응하여 실제로 커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리신(Irisin)이라는 마이오카인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근육이 수축할 때 분비되며, 혈뇌장벽 (BBB, 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해 해마에 직접 도달하여 BDNF 생성을 촉진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이리신 수치가 현저히 낮다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고, 이리신 수치가 높을수록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하위 부위의 부피가 크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근육을 수축시킬 때마다, 우리는 뇌를 향해 생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근육 수축 → BDNF·이리신 등을 포함한 마이오카인 분비 → 혈뇌장벽 통과
→ 해마에서 신경세포 보호·생성 → 기억·인지기능 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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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보다 스쿼트가 뇌에 더 좋다?
오랫동안 뇌 건강을 위한 운동은 유산소 운동의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흥미로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근력운동, 유산소운동, 심신운동 (태극권, 요가 등과 같이 명상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운동들), 복합운동 (근력, 유산소, 균형 훈련 등 여러 형태의 운동을 복합) 등 여러 형태의 운동의 뇌인지 개선 효과를 서로 비교 분석한 메타분석 결과, 인지적으로 건강한 고령자의 전체 인지기능 향상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은 바로 근력운동이었습니다 (Frontiers in Aging Neuroscience, 2025). 유산소 운동도 효과가 있지만, 근력운동의 효과 크기가 더 컸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 2회·회당 45분’을 최소한의 적절한 강도로 제시합니다.
이것이 유산소 운동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뇌를 위한 운동 = 달리기"라는 일관된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쓰는 스쿼트, 종아리 근육을 자극하는 까치발, 등 근육을 쓰는 브릿지 운동이 BDNF와 이리신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뇌를 지킵니다. 몸의 가장 큰 근육들을 쓰는 행위 자체가, 뇌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입니다.
운동은 뇌의 기분도 바꾼다
인지기능만이 아닙니다. 운동은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도 촉진합니다. 세로토닌은 기분 안정과 행복감, 도파민은 동기와 집중력의 핵심 물질입니다. 항우울제가 이 물질들의 재흡수를 막아 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운동은 이 물질들의 생산 자체를 늘립니다.
실제로 65세 이상의 경증·중등도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 근력운동을 포함한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항우울제와 견줄 만한 수준으로 우울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를 일관되게 보여왔습니다.
치매 걱정과 우울한 기분은 종종 같이 옵니다. 예전과 달라진 자신이 느껴질 때, 몸도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운동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건드리는, 처방전도 필요 없고 부작용도 없는 치료법입니다.
치매 위험의 45%는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
세계적인 학술지 Lancet에서는 3-4년마다 한번씩 치매에 대한 위험인자 보고서를 출간합니다. 가장 최신 리뷰인 2024년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치매 사례의 약 45%가 “예방 가능”한 요인들로 설명된다고 추정합니다. 고혈압, 당뇨, 흡연, 비만, 사회적 고립, 그리고 그 목록 안에 신체활동 부족이 포함됩니다.
45%라는 숫자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치매의 절반 가까이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환경, 그리고 나의 생활습관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결과라는 뜻입니다.
물론 운동 하나로 치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유전자도 있고, 운에 의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45% 안에서, 신체활동은 가장 접근하기 쉽고, 가장 근거가 풍부하며, 가장 부작용이 없는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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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쿼트가 10년 후의 기억을 지킨다
근력운동의 효과는 근육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수축하는 근육에서 분비된 마이오카인이 혈류를 타고 뇌에 도달하여, 신경세포를 살리고, 해마를 키우고, 기억을 붙잡습니다. 몸을 쓰는 것과 뇌를 쓰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가 아닙니다. 같은 행동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인지장애, 치매가 의심된다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고,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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