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의례의 의미
올해 또 이런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고민은 추석에 걸맞은 의례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형식은 내용을 낳고, 내용은 형식을 낳는다’란 신념을 가진 나로선 종교를 감안한 ‘단촐한 추석’에 어울리는 의례를 찾고 싶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디미트리스 질갈라타스 교수가 쓴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Ritual)’에 따르면 인간은 의례로 시작에서 의례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고 수행하는 의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한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례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심리적 위안을 받고, 난관을 극복하는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추석 차례는 이런 의례에 속한다. 이런 점 때문에 추석 차례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것이다. 의례에도 수명이 있기에,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의례라면 분명 그만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추석의 본질을 찾다
‘단촐한 추석’에 어울리는 의례를 찾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추석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던 전문가들이 그들의 연구를 집대성한 ‘추석: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책을 접하게 됐다. 필자들은 명절로서의 추석을 시대(신라-고려-조선-근대)별로 집중 조명했다.
송편을 추석 차례상에 올려 놓기 시작했던 시기는 조선시대였다. 신라시대엔 오늘날의 수제비와 같은 박탁(剝啄: 밀가루를 반죽하여 장국 따위에 적당한 크기로 떼어 넣어 익힌 음식)을 차례상에 올렸고, 고려시대엔 이렇다할 추석 대표 음식이 없었다. 조선시대엔 토란국이 송편을 대체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반달 모양의 송편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보름달에 대한 의미 부여도 시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추석 민속놀이도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시대별로 추석의 대표 음식이 변했고, 놀이문화도 상이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석 의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오면서 추석 문화가 시대 변화를 반영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판치는 요즘 사회에서 추석 의례를 과거 풍습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의례 자체보다 추석의 의미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추석을 맞이해서 조상의 음덕에 깊이 감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더불어 혈연과 지연의 연결고리를 더욱 견고하게 담금질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