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보다 나았던 그 시절 남편
영어를 읽고 말하고 쓰는 영어 클래스도 그랬다.
대여섯 쯤 되는 인원이었는데 남자들은 들어왔다가도 금방 빠져나가는 등 들고나기를 자주 했기 때문에, 남편은 선생님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 학생이었다. 남편은 여기서도 잘 버텼다. 비슷한 연령대의 영어 클래스 여자 수강생들과는 가끔 점심도 같이하고 차도 마시고 들어왔다. 가끔은 산책도 같이하고, 어느 해인가는 녹찻잎도 따러 가고 심지어 직접 녹차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여자 수강생들은 그들대로 유일한 남학생인 남편한테
“폴(남편의 영어 이름)은 옷도 잘 입고 친절하고 유머도 있고....”
라며 비위를 맞춰주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들의 추임새 말을 ‘팩트’로 알아듣곤
“내가 옷은 좀 입는 편이지...?” 라며 으쓱거렸다.
한 달 동안 국제대회의 ‘아타셰(attaché)’ 같은 외국어 봉사활동을 했을 때는 프랑스에서 온 10대 교포 여학생,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남녀대학생, 영어 잘하는 30대 주부 등 10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일했는데, 남편은 봉사활동도 활동이지만 젊은 남녀와 함께 어울려 일하는 것 자체를 엄청 즐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여자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남편은 전보다 확실히 여자들의 심리에도 밝아지고 공감능력도 좋아진 것 같았다. 잠재되어 있던 여성적인 특성이 드러나고 친밀성, 관계 지향성이 증가한다는 나이라서 그런지(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혼자 TV를 보다가 피부에 좋은 식품이나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되는 샴푸 만드는 법 같은 게 나오면 메모했다가 알려주기도 했다.
그즈음에 모 출판사 편집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이 점점 여자처럼 변해서... 어떤 때는 자매 같다니까요.”
그때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편집자 A 씨가 정색을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혹시 선생님 옷을 몰래 입고 나갈 때도 있나요?”
“아직, 그것까지는... 사이즈가 달라서...”
A 씨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럼, 자매보다 훨씬 낫네요. 옷 때문에 싸울 일도 없잖아요...”
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좋았다. 그때는 이해심도 높았고 공감 능력도 좋았는데.
무엇보다 그때는 집안일도 참 많이 했다. 내가 일하러 나가면 점심을 혼자 차려 먹은 후 설거지도 해 놓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꼼꼼히 해서 내다 버렸다. 요리까지 잘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