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없이도 노인들을 건강하게 만든 미친 프로젝트
👉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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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근래 거대한 인구 구조 재편을 겪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이야기가 아닙니다. 1인 가구의 증가세가 무섭기 때문이죠. 결혼을 미루거나 꺼리는 젊은 층도 여기 한 몫 하지만, 실제로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노인 1인 가구입니다. 노인 1인 가구라는 표현이 낯설다면, 보다 친숙한 표현인 독거노인으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독거노인이 계속 늘고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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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계청에서 이름을 바꾼 국가데이터처의 202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약 37.6%가 '1인 가구'로 파악됩니다.
한때 보편적 규범이었던 '자녀와의 동거' 비중은 불과 10.3%로 3년 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죠. 통상 남편을 사별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이 꽤 많은 겁니다. 단순한 가구 형태의 변화라기보단, 노인들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노인들의 삶이 외로워지고 있단 얘기죠.
여기에 맞물려 관찰되는 흥미로운 트렌드가 '반려동물'입니다.
2020년 인구총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 10.6%가 반려동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약 50만 4천 가구에 달합니다. 특히 '65세 이상 1인 가구', 즉 독거노인 중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는 12만 7천 가구로 집계되었습니다. 독거노인의 8.5% 정도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겁니다.
통상 독거노인은 경제적 여건이 나쁘다는 게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려동물을 기르는 걸까요? 서울시가 70대 이상 노인층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31.1%(70대)와 24%(80대)는 다른 이유가 아닌 "외로워서" 반려동물을 들이게 됐다고 응답했습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운 후 "외로움이 줄었다"라는 응답이 78.2%였으니 실제로 효과도 컸고요. 그렇지만 이건 피상적 이해에 불과합니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건,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가볍게 내릴만한 선택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노년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반려동물은 노년의 삶에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심지어는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노년에 반려동물을 기르기 위해선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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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사의 미친 짓이 일구어낸 의학적 성과
1990년대 초,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괴상한 일을 한 가지 벌립니다. 젊은 의사가 뉴욕주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Chase Memorial Nursing Home)의 의료 책임자로 부임하고 보니, 요양원 거주자들의 삶이 너무 지루하고, 무기력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위생과 환자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의료기관에 대뜸 개 네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 앵무새 수십 마리를 풀어버립니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반 쯤 떠넘기듯, 새 모이 주기와 개 산책, 고양이 돌보기를 맡기죠. 말 그대로 당시는 물론 지금 기준으로도 소위 ‘미친 짓’을 벌인 겁니다.
초기에는 당연히 혼란이 있었으나, 곧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노인들이 조금씩 동물에 관심을 두더니, 점차 성의껏 동물들을 돌보는데 이어, 거동이 불편하다며 방에만 머물던 이들조차 간호사실로 직접 찾아와 "내가 개를 산책시키겠다"라고 자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들의 반응이 좋아 보이자, 의사는 한술 더 떠 동물을 추가적으로 더 들이고, 방마다 식물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2년간의 대조군 연구 결과, 동물과 식물을 들인 요양원에선 놀라운 건강 개선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동물을 맡아 기르기 시작한 노인들의 사망률은 15% 감소했고, 의약품 사용량은 50% 수준으로 줄었으며, 특히나 무력감을 위해 사용하던 항정신성 의약품의 사용량이 특히 줄어든 걸로 확인됐습니다.
농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자란 특이한 의사 빌 토마스(Bill Thomas)가 시작한 ‘에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약을 전혀 쓰지 않고도 노인들의 무기력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의사 빌 토마스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동물과의 교감을 즐긴 덕분에 일어난 게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요양원 노인들은 타자를 돌보는 일을 통해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았다는 게 그의 분석이죠.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른 무기력한 절망 대신 돌보는 존재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낸 덕분입니다.
이처럼 반려동물은 고립된 노인에게 외로움을 달래주는 걸 넘어, 책임감을 통해 삶의 의지를 부여하는 강력한 비(非)약물적 개입이라는 게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삶에 반려동물을 들이는 게 좋은 이유죠.
반려동물 입양은 돈이 든다
앞서 살펴본 반려동물의 유용성을 고려하더라도, 반려동물 입양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통상 독거노인들의 소득이 낮은 편이기 때문이죠. 65세 이상 1인 가구 노인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약 58만 원 수준이며, 전체 노인의 평균 연금 수령액도 65만 원에 불과합니다. 평시에 생활을 꾸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반려동물을 기르는 비용이 만만찮기에 신중할 필요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살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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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는 14만 2천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독거노인 가구 월평균 연금(58만 원)의 약 24.5%에 해당하는 꽤 큰 금액이죠.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반려동물이 아플 때 문제가 생깁니다.
반려동물은 사람처럼 저렴한 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거든요. 통상적인 진료야 몇 만 원 선에서 끝날 수 있지만, 노령 반려동물은 수백만원이 넘는 지출이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서울시가 취약계층 반려인을 조사한 결과는 이 현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37.7%는 자신의 생활비를 아껴 반려동물 비용을 댄 적이 있고, 22.7%는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했으며, 7.8%는 돈을 빌린 적도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심지어 4.5%는 경제적 이유로 필요한 치료를 포기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재정적 위험이 결코 적잖은 거죠. 30대인 저도 주변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지인들이 ‘병원비’ 명목의 저축을 따로 하는 걸 봤는데, 노년엔 얼마나 큰 부담일까요.
아픈 것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죽음이 엮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슬픈 소망을 갖고 살 듯, 노년엔 반려동물이 먼저 떠나는 경우도 문제, 내가 반려동물보다 먼저 떠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반려동물과의 사별(死別)은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란 정서적 충격을 주고, 보호자 사후(死後)에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그리 행복한 삶을 보내진 못하거든요.
2023년 한 해 동안 전국 유기동물 보호소에 입소한 동물 중 약 40%에서 45%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자연사(2022년 기준 25.8%)하거나 안락사(15.7%)되었습니다. 보호소로 넘겨진 노인의 반려동물은 열흘 안에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후(死後)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펫 신탁(Pet Trust)' 상품을 출시했으나, 애초에 신탁할 자금이 없는 저소득 독거노인에게는 큰 실효성이 없습니다. 나의 잔여 수명과 통상적인 반려동물의 수명을 적절히 고려해야 양쪽의 불행을 줄일 수 있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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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인간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반려동물을 들이는 걸 단념해야만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노년기 반려동물 양육의 의의는 외로움을 달래거나 삶의 의지를 북돋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2019년 미국심장협회(AHA)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서 반려동물의 또 다른 효능이 입증됐거든요.
대략 383만명의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반려견 양육자는 비양육자에 비해 사망률이 극적으로 낮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반려견 양육은 '모든 사망'의 위험을 24% 감소시켰으며, 특히 '심혈관 질환 사망률' 위험은 31%나 감소시켰습니다. 이는 어지간한 수술은 물론 통상 복용하는 약도 능가하는 수준의 생존율 향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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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강아지들은 '산책'을 시켜줘야 하니, 산책을 겸한 강제적 신체 활동이 노년의 건강을 개선하거든요. 건강 유지를 위해 '하루 30분 걷기'가 쉬워 보여도, 이걸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반려견을 키우면, 내가 싫더라도 "개를 산책시켜야 한다"라는 책임감 때문에 꾸준한 걷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장기 추적 연구에 따르면, 반려견 양육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간 총보행 시간이 159.6분에서 187.5분으로 오히려 '증가'한 반면, 비양육자는 141.9분에서 126.0분으로 '감소'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활동량이 떨어지는 걸, 개와 함께하는 산책이 충분히 벌충해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노년기 반려동물 양육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 이상으로 건강까지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입니다. 반려동물과의 동행은 고독한 노후를 견디는 것을 넘어 스스로 삶을 돌보는 최선의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앞서 설명했던 문제들 역시 진지하게 고민하긴 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삶의 반려로 들인다는 건,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물건처럼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그럼에도 노년의 삶에 반려동물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움은 혼자서 달래지지 않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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