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문제는 기회 요인이 다양한 공간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기회 요인은 도시와 그 주변에 몰려 있다. 게다가 도시 안에서도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사는 곳은 분산적이고, 그 기회로의 접근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몸이 불편해서, 또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또 어떤 사람은 돌봐야 할 아이가 많아서 기회로의 접근 능력이 제한된다.
기회로의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가 성장할 가능성은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가가 대중교통을 운영하고, 이동 능력이 낮은 사람들을 ‘교통약자’라고 정의하고 지원하는 이유이다.
민간 자원인 ‘택시’의 면허와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버스와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역을 택시라는 수단으로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다.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는 진입 장벽을 만들어 경쟁에서 보호해주었고, 동시에 지나치게 높은 요금을 책정하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고, 이동성과 접근성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IT인프라와 플랫폼의 등장은 이동의 방법을 크게 바꿔 놓았지만, 욕구와 기회가 공간적으로 균등하지 않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이동은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이고, 많은 시간과 금전적인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활동이다.
디지털 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는 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졌고, 버스정류장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범용 AI가 등장하더라도 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은 여전히 힘든 일일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의 전제조건
이동과 기회의 구조적 불일치는 인구 전환 시대에 보다 강조된다. 병원 방문과 같은 필수적인 건강관리와 연장되는 경제활동,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는 이웃과의 교류로 표현되는 ‘기회’는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령자를 단순히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독일 및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액티브 에이징(Active Ageing)’의 정책 기조와 맥락을 같이 한다.
고령층이 건강을 유지하며, 노동시장과 지역사회에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 마련을 목표로 하는 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과 함께 고령화 속도가 지구상 그 어느 국가보다도 빠른 우리나라가 모빌리티 중요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