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급격하게 늘리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 충격을 막기 위해 돈을 많이 집행했는데, 이후로도 높아진 지출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재정 지출을 계속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죠. 그래서 적어도 2030년 무렵까지는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놓는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흐름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통화량이란 어떤 개념일까요. 간단히 짚어봅니다. 통화량에는 M1으로 표현하는 ‘협의의 통화량’이 있고요. M2로 표현하는 ‘광의의 통화량’이 있습니다. M1은 현금, 요구불 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가리킵니다. 현금 또는 즉시 인출이 가능해 현금이나 다름없는 예금을 M1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보다 넓은 의미의 M2는 M1을 모두 포함하며, 이외에도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수익증권(주로 펀드), 양도성 예금증서(CD), 어음, 그리고 정기예금을 비롯한 만기 2년미만의 다양한 금융상품들까지 포함합니다. 늦어도 2~3일 안에는 큰 손해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이 M2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M1은 ‘사실상 현금’을 말하고 M2는 ‘유동성이 높은 돈’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전제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M2를 통화량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4400조원에 달하는 M2를 소유주별로 구분하면 절반은 가계가 갖고 있고요. 어디에 예치돼 있느냐로 보면 4400조원의 절반가량이 은행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왜 코로나 사태가 끝났는데도 정부가 돈을 많이 풀어놓을까
통화량이 늘어나는 이유 중 80% 정도는 가계와 기업이 민간에서 연쇄적으로 대출을 일으키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많이 풀어 놓을수록 민간에서 대출로 늘리는 통화량이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보통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일정한 액수의 돈을 풀어놓으면, 그 액수의 13~15배가량이 민간에서 대출이 꼬리를 물면서 광의의 통화량(M2)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된 지 줄잡아 3년은 됐지만 여전히 그때만큼 정부가 돈을 많이 풀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 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과 관련한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와 관련해 중요하니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별로 차이는 있더라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출산·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국은 물론 주요국들이 법률에 정해진 대로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복지 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연금 지급, 건강보험 재정 확충, 노인 의료 및 복지 등에 쓰는 돈인데요. 매년 자동으로 증가하게 되며,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지출하는 액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현금 지원과 보육 시설 확충 등에도 대규모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선진국들이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세수(稅收)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민간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경제가 자체적으로 성장할 힘을 잃자, 정부가 수요를 직접 창출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덧붙여 무제한적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놓는 ‘양적 완화(QE)’를 실시하는 전례 없는 통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경기를 살려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에만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직접 수요를 진작하려고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정책 방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미국, 중국, 유럽, 한국 등이 모두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 등의 유망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2020년대 관행이 됐습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안보 위협을 느끼는 선진국이 늘어나면서 국방비 증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에 대해 정부가 해결하라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 액수를 선진국들이 늘리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한번 확대된 복지 및 공공 서비스 지출은 국민의 기대 수준을 높이기 때문에 삭감이 매우 어렵습니다.
나눠주는 돈의 액수를 줄이는 데 정치인들은 큰 부담을 느낍니다. 재정 지출에 ‘비가역성’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대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습니다. 2010년대 이후 오랫동안 저금리가 유지된 탓에 정부든 개인이든 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졌습니다.
원래 한국은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해 재정 적자가 10조~20조원 안팎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112조원의 적자가 발생했고요. 이후로도 대략 한 해 100조원가량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8월까지만 해도 무려 88조원이 적자입니다.
정부는 적자가 나는 만큼을 모두 국채를 찍어 빚으로 충당합니다. 정부가 신용으로 빚을 내는 액수가 많을수록 통화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2020년대 들어서는 그 이전과는 돈의 유통량이 차원이 다르게 많아졌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