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이 걱정되는 부모님 집, 어떻게 바꿔드려야 할까? 👉 글 : 김재윤 / 재활의학과 전문의, 서울수정형외과의원 대표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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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할머니는 93세 때 낙상으로 고관절 골절을 당하셨습니다.
93세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이 적지 않았기에, 수술을 할지 말지를 두고 가족들 사이에 긴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길이 없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지내시다가 폐렴, 욕창, 혈전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는 수순이 너무나 뻔히 보였습니다. 반면 수술이 잘 된다면,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걷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수술을 결정했고, 몇 달을 고생하시긴 했지만 결국엔 지팡이를 짚고 부축 받아 걸으며 집으로 다시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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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낙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쌓여온 위험인자들이 하나씩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은 것이었습니다.
시력과 청력은 해가 갈수록 나빠지고 계셨습니다. 보청기도 잘 작동하지 않아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셨습니다. 나이가 드시면서 말초신경병증이 생겨, 양쪽 발바닥의 감각이 둔해지고 저려하셨습니다. 퇴행성 측만증으로 허리는 많이 휘어 있었고, 근력이 조금씩 조금씩 빠지면서 의자에서 혼자 일어나시는 것도 예전보다 확실히 힘들어하셨습니다. 이 요소들이 하나하나 합쳐진 끝에, 우리 할머니는 어느 날 낙상으로 고관절 골절을 당하신 것입니다.
노년기 낙상이 치명적인 이유
미국 질병관리청 (CDC)은 낙상은 65세 이상 노인에서 손상으로 인한 사망 원인 1위라고 명시합니다. 질병이 아닌, 손상으로 발생한 사망 중에서는 교통사고 보다도 낙상으로 인한 것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약 30%가 매년 한 번 이상 크고 작은 낙상을 경험하며, 이 중 5~10%는 골절을 동반합니다. 그 중에서도 고관절 골절은 그 결과가 심각합니다.
고관절 골절 후 1년 이내 사망률은 약 20~30%에 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뼈가 부러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술 후 장기간 누워 지내는 과정에서 폐렴, 혈전, 욕창이 생기고, 급격한 근육 감소로 재활이 어려워지며, 결국 전신 기능이 무너집니다. 고관절 골절 환자의 절반 가량은 이전 수준의 보행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많은 경우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시설로의 입소로 이어집니다. 낙상 한 번이 나머지 삶의 궤적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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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의 위험인자 - 무엇이 넘어지게 만드는가
낙상은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가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영역에 있습니다.
낙상의 위험인자는 크게 신체 내부에서 비롯되는 내인성 요인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외인성 요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인성 위험인자
1) 이전 낙상 경험
낙상 위험인자 중 가장 강력한 단일 예측인자는 "과거에 넘어진 적이 있느냐"입니다. 한 번 넘어진 사람은 다시 넘어질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으며, 이는 수십 개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결과입니다. 이미 균형 능력이나 보행 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첫 낙상 이후 생기는 ‘낙상에 대한 공포(Fear of Falling)’가 활동을 위축시켜 근육을 더 약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전 세계 노인의 약 절반(49.6%)이 낙상 공포를 경험하며, 이 공포감 자체가 독립적인 낙상 위험인자로 작용합니다.
2) 하지 근력 저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은 균형이 흔들렸을 때 순간적으로 자세를 잡아주는 핵심 근육입니다. 근력이 저하되면 넘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의자에서 혼자 일어서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다면, 그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낙상 위험이 높아졌다는 신호입니다. 악력(쥐는 힘)이 낮을수록 낙상 위험이 높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악력은 전신 근력의 대리지표이기 때문입니다. 2화와 7화에서 살펴본 근감소증이 낙상과 직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균형 및 보행 능력 저하
보행속도가 초당 1.0m 이하이면 낙상 위험이 약 1.2-1.8배 유의미하게 높아집니다. 한 발로 10초 이상 서 있기가 어렵다면 이미 균형 능력이 저하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중 과제(dual-task) 수행 능력, 즉 걸으면서 동시에 말하거나 생각하는 능력의 저하도 낙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낙상이 걷다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순간, 혹은 뭔가를 생각하다가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4) 말초신경병증, 감각 저하
당뇨, 노화, 특정 약물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말초신경병증은 발바닥과 발목의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이 감각이 둔해지면 고유수용감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발목이 삐끗하는 느낌을 제때 감지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뇌가 자세를 교정할 타이밍을 놓치게 합니다. 발이 저리고 감각이 없다는 증상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낙상 위험이 매우 높아졌다는 경고입니다.
5) 기립성 저혈압 (Orthostatic Hypotension)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 갑자기 일어설 때 수축기혈압이 20mmHg 이상 떨어지는 상태를 기립성 저혈압이라 합니다. 노인에서 흔하며, 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서 기립성 저혈압은 낙상 위험을 약 1.73배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혈압약을 복용 중인 분들, 당뇨가 있는 분들, 탈수가 되기 쉬운 여름날에 특히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침에 화장실 가느라 급하게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시간 중 하나입니다.
6) 약물 - 수면제·신경안정제·다약제 복용
약물은 교정 가능한 위험인자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특히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는, 국내 건강보험 데이터를 이용한 대규모 연구에서 복용 후 낙상 또는 낙상 골절 위험을 약 2.16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졸피뎀 등 Z계열 수면제도 골절 위험을 1.63배 높인다는 메타분석 결과가 있습니다. 4가지 이상의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다약제(polypharmacy) 상태 자체도 반복 낙상 위험을 1.5~2배 높입니다. 잠이 안 온다고 수면제를 드신다면, 그 약이 밤에 화장실 가는 길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7) 시력·청력 저하
백내장,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등으로 시야가 흐려지면 계단의 끝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바닥의 단차를 놓치게 됩니다. 백내장 수술 후 낙상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청력 저하는 종종 간과되는데, 소리는 공간을 인식하고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청기가 잘 작동하지 않거나 착용을 꺼리는 경우, 청각을 통한 환경 인식이 떨어지고 낙상 위험이 올라갑니다.
8) 인지 기능 저하 및 우울증
인지 기능이 저하되면 환경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 즉 저 바닥이 미끄럽겠구나, 여기는 계단이니 조심해야지 하는 판단 자체가 무뎌집니다. 치매 환자의 낙상 위험은 인지 기능이 정상인 노인에 비해 약 2-3배 높다고 보고됩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경향이 있고, 주의가 흐트러져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항우울제 자체가 낙상 위험을 높이는 약물이기도 합니다. 정서 건강과 낙상은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긴밀하게 엮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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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성 위험인자
내인성 요인이 몸 안에서 비롯된 위험이라면, 외인성 요인은 생활환경 안에 숨어 있는 위험입니다. 전체 낙상의 50-70%는 실내, 그것도 집 안에서 발생합니다. 가장 오래 머물고 가장 익숙한 내 집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위험 요소를 찾아 제거해주는 것이 사고를 방지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1) 야간 조명 부족
화장실 가는 길, 계단, 현관의 조명이 어두우면 밤중에 바닥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특히 노인의 동공은 어두운 곳에서 빛에 적응하는 속도가 젊은 사람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야간등 하나가 실질적인 낙상 예방 장치가 됩니다.
2) 미끄러운 바닥과 욕실
낙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 중 하나는 욕실입니다. 젖은 타일, 욕조 안, 욕조에서 나올 때가 특히 위험합니다.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와 손잡이는 단순한 편의용품이 아니라, 낙상을 막는 의료적 개입에 해당합니다.
3) 문턱, 바닥 단차, 전선
발을 충분히 들어 올리는 능력이 떨어진 노인에게, 방과 거실 사이의 아주 작은 문턱도 충분한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카펫 끝자락, 전선, 미끄러운 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안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림돌이 될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낮은 의자·변기·침대
앉았다 일어서는 높이가 낮을수록 허벅지 근력에 더 큰 부담이 걸립니다. 소파가 너무 푹신하고 낮으면, 일어서려 할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쏠릴 수 있습니다. 팔걸이가 있는 의자로 교체하거나, 변기 높이 보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5) 부적절한 신발
실내에서 양말만 신고 다니거나, 뒤가 터진 슬리퍼를 신으면 발이 충분히 고정되지 않아 순간적인 균형 회복을 방해합니다. 실내에서도 뒤꿈치가 감싸지는, 바닥에 미끄럼방지 고무가 있는 덧신류를 신거나 맨발로 다니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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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 예방의 세 축 - 근력, 균형, 환경
2019년 미국 노인의학회(AGS)와 영국 노인의학회(BGS)가 공동 발표한 낙상 예방 가이드라인은 낙상 예방을 위한 가장 강력한 단일 개입으로 운동, 특히 근력운동과 균형 훈련의 병행을 1순위로 권고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위험인자들 중 교정 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줄여나가는 것이 낙상 예방의 핵심입니다.
1) 근력운동
이전 화에서 살펴본 허벅지·엉덩이·종아리·척추기립근의 근력운동은 낙상 예방의 근본 토대입니다. 특히 순간적인 자세 교정은 근육이 빠르게 수축하는 능력, 즉 파워에 달려 있습니다. 주 2회 이상의 꾸준한 근력운동이 첫 번째 축입니다.
2) 균형 훈련
근력이 충분해도 고유수용감각과 반사 속도가 훈련되지 않으면 낙상은 막기 어렵습니다. 한 발 서기, 발 뒤꿈치-발끝 일자 걷기, 까치발 들기 같은 균형 훈련을 근력운동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3) 환경 개선
야간 조명 설치, 욕실 손잡이와 미끄럼 방지 매트, 문턱 제거, 슬리퍼 대신 뒤꿈치 감싸는 실내화 착용. 이 작은 변화들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과가 큰 예방 수단입니다.
낙상은 "운이 나쁜 사고"가 아닙니다
할머니는 수술을 잘 마치신 후에도, 여러 내과적인 문제와 재활 운동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의 낙상에는 막을 수 있었던 것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작동하지 않는 보청기를 더 일찍 고쳐드렸다면, 집 안 야간 조명을 더 밝게 해드렸다면, 방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콘센트선을 정리해 놓았다면, 근력이 빠지는 것을 더 일찍 알아채고 운동 해야 된다고 잔소리라도 했었다면. 낙상은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위험인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점점 나이 들며 노쇠하고 있는 부모님, 혹은 본인 자신이 있다면, 이 칼럼에서 살펴본 위험인자들을 한 번쯤 찬찬히 점검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곧, 건강한 노후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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