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시청 공무원 윌리엄스는 늘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삶의 여유는 미뤘다. 어느 날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남은 인생을 만끽해 보려 했지만 평생 기쁨을 보류하며 살아온 탓에 즐기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정시 출퇴근하던 직장을 결근하고, 거리를 헤매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동료 직원들은 윌리엄스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성실함을 향한 긍정적인 평가이기도 했고, 때론 재미없는 인생에 대한 조소이기도 했죠. 자신을 ‘좀비’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해리스의 말에 상처를 받은 건 어느 정도 수긍이 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삶은 출근과 퇴근으로 이뤄졌으며 누구와도 농담 한 마디 나누지 않았죠. 집에서 아들과 며느리는 그가 대화하자고 할까 두려워 방으로 들어가기 바쁩니다.
처음부터 따분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 그는 멋진 신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듯 자신도 모르는 새” 지루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남은 삶을 허비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압도돼 무미건조하게 숨쉬다 저무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의미’로가득 채워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몇 개월간의 방황 끝에 윌리엄스는 깨닫습니다. 중요한 일은 보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급한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버리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일’은 영영 해낼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직장으로 돌아가 서류 더미 속에 장시간 묻혔던 주민들의 청원을 하나 꺼냅니다.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공터를 어린이 놀이터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간 해당 민원은 여러 과를 오갔습니다. 서로 다른 부서의 책임으로 미루는 동안 사업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윌리엄스는 놀이터 사업을 최우선순위 업무로 올려두고, 직접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돌아다닙니다. 타부서에서 미루려 해도 본인이 민원인인 듯 기다립니다. 누군가 자기 일처럼 붙들지 않는 이상 언제나 ‘남의 일’로만 남을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원 사업은 추진되고, 끝내 완성됩니다. 포격 이후 죽음의 흔적만 남았던 공간이 새싹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생명의 토양으로 탈바꿈합니다.
카메라는 곧 윌리엄스의 장례를 비춥니다. 그의 뜨거웠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은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꼭대기에 다다르기 위해선 눈앞에 있는 계단을 먼저 밟아야 한다고요. 아직도 갈 길이 많아 보여 기운이 빠질 때는 그간 걸어온 계단을 돌아보며 용기를 얻으면 된다고요. 내 생에 다 못 오른 계단은 뒷사람이 마저 오를 것이라고요.
윌리엄스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친이 앓던 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쉬워합니다. 아버지가 인생 마지막 챕터를 외롭게 덮도록 내버려뒀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칩니다.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 직원 해리스에겐 병명을 털어 놓고, 혈육인 자신에겐 알리지 않았다는 데서 서운함을 느끼는 듯 보입니다. “말씀만 하셨다면 그렇게 가시게 두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들의 말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말은 그가 아버지의 말년을 함께할 수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만 곁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사실 그는 매일 아버지를 피해 다니기 급급했습니다. 아내와 함께할 미래를 설계하고, 내일 직장에 나가서 쓸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죠. 아들은 아버지의 사망이 마침표가 돼 이별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선 아들과 이별한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일상을 함께하지 않은 뒤부터였죠.
<리빙: 어떤 인생>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그 사람의 삶을 규정짓는다고 얘기합니다. 나의 유한한 시간을 기꺼이 쏟는 그 일들이 모여 내 인생을 완성합니다. 내 아까운 1분과 하루를 내어준 그 사람이 나의 소중한 인연으로 남습니다. 시간을 아끼는 데만 골몰하다보면 결국 아무도 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삶의 소중한 한 조각, 한 조각을 어디에 쓸지,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