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MT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CEO 주이밍(朱一明) 회장이다. 그는 단순히 기술을 아는 경영자를 넘어, 중국 반도체 굴기의 ‘야전사령관’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다.
1972년생, 올해 53세인 주이밍은 중국의 명문 칭화대(미세전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에서 R&D 엔지니어로 실력을 쌓고 중국으로 귀국한 전형적인 해외 귀환 전문가다.
시작부터 메모리 반도체에 특화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5년 베이징에 반도체 설계 회사인 기가디바이스(GigaDevice, 兆易創新)를 설립하게 된다. 당시 그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현장을 누비는 ‘미국식 스타일’의 경영자로 유명했다.
기가디바이스의 주력 품종은 노어(NOR) 플래시다. 이 분야 전 세계 점유율 2~3위를 다투는 강자로 성장했다. 애플 에어팟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공급하며 ‘중국 반도체도 애플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증명한 곳이기도 하다.
성공했다. 설립 10년 만인 2016년 상하이 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중국에서 돈 많은 사람 리스트 50에 오르기도 했다. 이미 수조 원대 자산가가 된 그에게 남은 과제는 더는 없을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그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된다.
허페이 시정부와 기가 디바이스의 성공적인 콜라보
주이밍이 기가디바이스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2015년 ‘중국 제조 2025’가 발표됐다. 반도체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 지원이 시작됐다. 주 회장의 메모리 반도체 열망과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의지는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만난다.
“판은 우리가 깔 테니, 직접 제조 사령탑을 맡아달라”
주이밍의 두 번째 도전을 가능케 했던 제안이 안휘성 허페이 시정부로부터 날아들었다. 허페이 시정부는 설계 역량을 갖춘 주이밍에게 “반도체 회사를 지어달라”라고 요청한 것이다. 팹리스(설계)에 안주하던 주이밍에게 설계와 제조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의 전환은 엄청난 리스크였다. 그러나 그는 오케이 했다. 국가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범한 게 바로 CXMT다.
주이밍은 기가디바이스 상장으로 거둔 자금, 그리고 메모리 분야 설계 노하우를 모두 CXMT에 투입했다. 기가디바이스를 통해 기초 체력을 다진 뒤, CXMT라는 '무거운 제조'의 바다로 뛰어들었던 셈이다.
2016년 설립 당시 허페이 시정부는 초기 자본금의 대부분을 직접 출자하며 ‘뒷배’를 자처했다. 180억 위안(약 3조5000억원)의 설립 자금 중 75%는 허페이시가, 나머지는 기가 디바이스가 냈다. 주이밍은 지금도 CXMT 지분 25% 안팎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