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다.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바닥나는 것. 모아둔 돈을 매년 얼마씩 꺼내 써야 평생 마르지 않을까. 30여 년 전, 이 절박한 질문에 처음으로 숫자로 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윌리엄 벤겐(William P. Bengen)이다.
그가 1994년 제시한 답은 ‘4% 룰’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전 세계 은퇴 설계의 표준이 됐다. 은퇴 첫해에 자산의 4%를 인출하고 이후 물가상승률만큼 늘려 가면, 과거 어떤 최악의 시기에 은퇴했더라도 30년간 돈이 바닥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견고한 원칙을 만든 사람이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MIT 항공우주공학도 출신으로 현장에서 고객을 상담하던 재무설계사(CFP) 벤겐은, 은퇴자가 얼마를 인출해야 안전한지 누구도 답하지 못하던 질문에 부닥쳤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과거 시장 데이터를 직접 파고들어, 막연한 통념의 영역이던 이 문제를 정밀한 숫자로 바꿔놓았다.
그로부터 30년, 벤겐은 지금도 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펴낸 신간에서 그는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투자하면 자산에서 인출 가능한 비율을 4%에서 4.7%까지 끌어올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작 많은 은퇴자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한다. 4%라는 숫자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악의 사례를 가정한 하한선일 뿐, 대다수 은퇴자는 더 풍족하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에게 은퇴 이후, 자산을 꺼내 쓰는 국면에서 부닥칠 질문을 던졌다. 매년 얼마씩 꺼내 써야 노후 자금이 바닥나지 않는가, 은퇴 이후에도 주식 비중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가, 은퇴 직후의 시장 폭락은 왜 그토록 치명적인가. ‘4% 룰의 아버지’가 직접 들려준 답은 통념보다 훨씬 대담했다.
‘4% 룰’은 한국에서도 폭넓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1990년대 초, 저는 은퇴 계좌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금을 인출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투자 수익률에 관한 미국의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30년의 기간 동안 세제 혜택 계좌의 잔액이 최종적으로 0이 되도록 매년 전년도 인플레이션만큼 인출액을 늘리는 방식의 인출 전략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100년 중 ‘최악의 사례’는 1968년 10월 1일에 은퇴한 사람으로, 은퇴 초기에 여러 차례의 약세장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탓에 은퇴 첫해에 안전하게 인출할 수 있는 ‘인출률(포트폴리오 자산 대비 인출 금액 비중)’이 4.15%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 여러 문화적 영향이 더해져 다듬어진 끝에 ‘4% 룰’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4%는 첫해에만 적용됩니다. 첫해에 포트폴리오의 4%를 출금하고, 그 다음부터는 첫해에 출금한 금액에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늘려 출금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노후 자산을 현금이나 원리금보장상품에만 묶어 두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이들에게 왜 투자가 필요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은퇴자에게 가장 중요한 재무적 문제는 돈이 바닥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높은 인출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은퇴 초기의 약세장이 인출률을 낮출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위협은 인플레이션입니다.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인출액을 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높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인출 계획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금이나 지나치게 안전한 자산에 과도한 자금을 두면 인출률이 크게 낮아집니다. 현금 비중을 늘리려면 그만큼 고수익 투자에 대한 배분을 줄여야 하고, 이는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률을 낮추며 그에 따라 인출률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커집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이것이 상당한 손실과 인출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주식 65%, 채권 30%, 현금 5% 배분을 최적으로 추천합니다. 채권과 현금의 비율은 인출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최근 워런 버핏은 15%의 현금 비중, 즉 3년 치 인출액에 해당하는 현금을 보유해 주식시장 하락기에는 모든 인출을 현금으로 충당해 불리한 가격에 주식을 파는 일을 막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60:40 포트폴리오’를 가장 이상적인 자산배분 방식이라고 생각하나요? ‘100-나이 법칙’과 같이 나이가 들수록 점진적으로 주식 비중을 줄이는 방식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100-나이 룰’에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 연구는 은퇴 기간 중 주식 비중을 줄이면 인출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60:40(주식:채권) 배분은 좀 더 합리적입니다. 제 최근 연구는 65:35 배분이 거의 최적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배분 안에서 분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