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했던 폭염이 입추를 지나며 불어오는 바람 덕에 살짝 꺾인 듯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낮에는 뜨거운 열기가 계속되고 있죠. 오죽하면 한국을 찾은 동남아 관광객들마저 예상치 못한 무더위에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열흘 정도만 지나면 가을의 문을 열어주는 '처서 매직'이 찾아온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운 내시기를 바랍니다. 😍 계절이 바뀌듯, 우리가 가입해 둔 금융 상품들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특히 연금 상품은 한 번 가입하고 수령 시점까지 '오래 두고 잊어버리는' 대표적인 상품인데요. "옛날에 가입했으니 알아서 잘 굴러가겠지", "오래된 상품이 최근 것보다 더 좋은 것 아닌가?" 하고 방치해 두고 계시진 않나요?
금융 시장과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과거의 연금 상품이 현재의 자산배분 전략이나 수익률 관리에 더 이상 최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상품에 어떤 유용한 기능들이 있는지, 지금 시대의 투자 환경에 여전히 적합한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오래된 연금저축'을 지금 당장 꺼내서 점검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볼 거에요. 다가올 선선한 가을을 기다리며, 이번 주 뉴스레터와 함께 내 연금 계좌의 먼지를 털어내고 단단하게 재정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From 광복절 연휴를 기다리며 운용감, 연금화 드림
'내가 산 거'라서 차마 팔지 못하는 심리, 연금 투자엔 어떤 영향이?
👉글 : 오현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수석매니저
홈쇼핑이나 OTT 서비스를 구독할 때 종종 눈에 띄는 문구가 있어요. “일주일간 무료로 써 보세요.”, “마음에 안 드시면 100% 무료 환불” 같은 말들이죠. 이런 체험 서비스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해요. 우리는 일단 마음먹고 곁에 둔 대상을 쉽게 내치지 못하고, 거기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불러요.
심리학자로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연구 중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어요. 카네만 교수는 학생들에게 머그잔을 나눠준 뒤 판매 가격을 매기게 했고, 잔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구매 가격을 적게 했어요.
위의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죠. 머그잔을 가진 학생들이 적어낸 판매가가 구매할 학생들이 제시한 가격보다 2배 이상 높았거든요. 단지 내 손에 쥐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머그잔을 가진 학생들은 일반적인 기대치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한 거예요.
이러한 심리적 애착은 단지 손에 잡히는 물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금융상품에서도 마찬가지죠. 더 유리한 대안이 있는데도 오래 보유해 왔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특정 상품을 장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생기곤 해요. 내가 소유한 것에 대한 애착이 생기다 보니 더더욱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죠.
장기투자라는 확실한 목표와 근거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내 선택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문제는 이렇게 잘못된 방향성을 가진 재무적 결정이 긴 시간의 흐름과 만날 때예요. 세월이 흐를수록 지불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 매몰비용에 대한 생각이 커집니다. 서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후 자산을 모으는 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감정을 내려놓고 주기적으로 자산을 점검하고 재배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운용해야 하는 연금 상품은 적립 기간이 길고 수령 시기도 멀리 있다 보니, 자산을 다시 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수 있어요. 연금저축도 그 중 하나이죠.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연금저축 투자 백서>를 살펴보면, 연금저축도 조금 더 동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거에요.
연금저축은 납입액 중 최대 600만 원까지 소득에 따라 13.2%~16.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과세이연 및 저율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품이에요.
현재 가입할 수 있는 연금저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가입자가 직접 ETF나 펀드를 골라 투자하는 ‘연금저축펀드’와, 원리금을 보장하는 대신 가입 초반 수년간 사업비 등 수수료가 집중되는 ‘연금저축보험’이에요. 전체 적립금 규모로 보면 연금저축보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아래 그래프 참고)
*출처 : 우리나라 연금저축 투자백서
하지만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요. 지난 1년간 신규 가입자의 대부분인 93% 이상이 연금저축펀드를 선택했거든요. 국내 증시 활성화에 따라 연금저축펀드의 최근 1년 연평균 수익률이 29%가 넘는 등 투자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아진 결과로 보여요. (아래 그래프 참고)
*출처 : 우리나라 연금저축 투자백서
그렇다고 적립금이 더 많다는 이유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상품이 더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개인의 투자 성향에 따라 원금 보장의 안정성이 최우선일 수도 있고, 노후 자금을 더 많이 모으는 게 우선일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것이 합리적인 재무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에요.
만약 연금저축 계좌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기존 계좌를 해지할 필요는 없어요. 중도 해지하면 그동안 세액공제 받았던 원금과 수익에 대해 16.5%라는 기타소득세 페널티를 물어야 하지만, ‘연금저축 계좌이체 제도’를 활용하면 그동안 쌓아온 가입 기간과 세제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연금저축 계좌로 옮겨갈 수 있거든요.
연금저축은 국민연금, 퇴직연금과 함께 우리의 인생 2막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노후 자산의 한 축이에요. 그 무게감만큼이나 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정감을 전해주죠. 하지만 단순히 ‘소유’하고 있다는 안도감에만 머무르기엔 아쉬워요. 어느 정도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현명하게 ‘성장’시켜 나갈 때, 연금저축의 존재가 우리의 노후를 한층 더 빛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